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위대한 세기/등장인물 (문단 편집) ==== [[무스타파 황자]] ==== || [[파일:attachment/무흐테솀 유즈이을/mustafa.jpg|width=100%]] || || {{{+1 {{{#ffffff '''무스타파 황자 | Şehzade Mustafa'''}}}}}} || || {{{#000000 ● 유년기: 유수프 베르칸 데미르바으(Yusuf Berkan Demirbağ) 분[br]● 성년기: 메흐멧 귄쉬르(Mehmet Günsür) 분}}} || 마히데브란의 아들로 쉴레이만의 맏아들이다. 어머니와 함께 이스탄불로 오면서 아버지와 이브라힘 파샤를 만날 생각에 기뻐하는 모습으로 첫 등장.[* 이브라힘 파샤와는 친분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실제 역사에 근거한 것으로, 이브라힘은 사심없이 오스만 제국의 내일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쉴레이만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무스타파를 차기 황제로 지지했었다.] 궁전에서는 배다른 동생들인 휴렘의 자식들에게도 잘대해주고 같이 어울려 지내지만 아버지에게 소박맞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한다. 총명하고, 가장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일찌감치 궁중 사람들 사이에서 쉴레이만의 유력한 후계자로 점찍어져 있었지만 자신의 자식들을 보위에 올리려는 휴렘과 궁중 내의 암투로 인해 마니사로 쫓겨난다. 그 후에도 휴렘의 음모로 임지를 옮기고 아마시아로 좌천되었다가 기나긴 모종의 음모로 인해 아버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죽는다. 유일하게 마히데브란이 큰소리 칠 수 있는 근거였던 인물이지만 무스타파가 죽고 나서 마히데브란의 비중도 ~~가뜩이나 공기수준이지만~~ 공기로 떨어진다. 백성들과 부하들에게 존경을 받는 이상적인 황자 상으로 나오기 때문에 최후가 안타깝다.[* 실제 역사에서 당시 신성 로마 제국에서 파견한 대사 오지에 길랭 드뷔스베크(Ogier Ghiselin de Busbecq)는, '(쉴레이만의) 아들들 가운데 무스타파라는 자가 있는데, 놀라울 정도로 잘 교육받았고 사려 깊으며 이제 24세 또는 25세이기에 제위에 오를 만한 나이가 되었다. 부디 신께서 그런 힘을 가진 바르바리인이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도록 해주시길 바랄 뿐이다'라고 기록했을 정도. 다만 드뷔스베크라는 사람은 오스만빠 기질이 다분했기에, 적당히 가감해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실제 역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극중에서는 처음 등장할 때 이스탄불로 돌아온 어린 무스타파가 아이셰 하프사 술탄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아버지가 보고싶어."라고 말하자, 아이셰 하프사 술탄이 "폐하는 공무에 바쁘십니다."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그럼 이리 오라고 해. 명령이야!(…)"'''라고 땡깡을 부린다.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이에 심기가 불편해져서 무스타파를 내보내고, 마히데브란 술탄만 남겨놓은 가운데서 "네가 시켰냐? 어떻게 무스타파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지?"라고 책망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친할머니에게 '명령이야!'라고 땡깡부린 것이기 때문.'''] 마히데브란이 무스타파에게 "왕자님은 차기 파디샤가 되실겁니다."라고 바람을 넣었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아이셰 하프사 술탄은 마히데브란에게 주제넘게 굴지 말라고 경고한다. 실제 역사에서 무스타파 황자가 자신이 후계자라고 생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쉴레이만 시대[* 정확히는 16대 술탄인 [[아흐메트 1세]](재위: 1603~1617) 때까지.]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가장 유능한 황자가 뒤를 잇지 나이로 후계를 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황자가 10대 중후반쯤 되면 지방 총독으로 내려보내 싹수가 있는지 없는지를 미리 살펴보는 게 관습이었는데, 이때 황자의 모후(술탄을 기준으로 하면 여러 후궁 중 하나)가 황자를 따라가는 것도 관습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마히데브란을 몰아내고 쉴레이만을 독차지하려던 휴렘이 이용한 것이 바로 이 관습. 무스타파도 이제 지방으로 내려갈 나이가 되었으니, 모자가 함께 저쪽 시골에 가서 처박혀 있으라는 것.] 배우인 메흐멧 귄쉬르가 [[정웅인]]을 많이 닮은 얼굴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오스만인들의 인망을 한 몸에 받은 황자였다.''' 당연히 황위 계승자가 될 것으로 생각되고 있었으며, 무스타파가 휘렘 술탄의 음모에 의해 희생되자 차기 황제감이 근거도 없이 반역죄로 죽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란이 일어났을 정도.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